시대정신
"꼭 돌아오겠다" 유상철 전 감독이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 본문
프로축구연맹은 7일 “유상철 감독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마지막까지 병마와 싸웠으나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고인은 인천 지휘봉을 잡고 있던 2019년 10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꼴찌로 2부리그 강등 위기에 몰린 인천의 소방수로 부임한지 몇 달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췌장암은 4기 진단을 받을 경우 평균 수명이 8개월 안팎이지만 고인은 사령탑의 책임감을 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다. 당시 고인은 강력한 의지로 큰 결실을 맺으며 감동을 낳았다. 인천을 극적으로 1부리그에 잔류키면서 “반드시 그라운드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팀을 떠났다.
고인은 그라운드로 복귀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독한 항암 치료를 견뎠다. 긍정적 사고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이 암과 싸우는 과정을 ‘유비컨티뉴’라는 다큐멘터리로 공개하기도 했다. 고인의 별명인 유비와 영어로 ‘계속되다’라는 뜻의 컨티뉴를 묶어 희망의 메시지와 함께 재기를 다진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고, 통원 치료 대신 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았음에도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고인은 현역 시절 골키퍼 외에는 어떤 포지션도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였다. 1994년 고향팀인 울산 현대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그해 수비수로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됐다. 1998년에는 미드필더로 전업해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할 정도로 포지별별 적응력이 뛰어났다. 당연히 그해 미드필드 부문 베스트일레븐은 그의 몫이었다. 일본 J리그 가시와 레이솔로 떠났다가 2002년 울산에 복귀한 고인은 공격수로 베스트 일레븐을 뽑히면서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로 모두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드문 이력을 만들었다.
고인이 12년간 프로 생활을 한 뒤 2006년 울산에서 은퇴할 때까지 K리그에 남긴 통산 기록은 142경기 37골 9도움이었다. 누구보다 화려한 길을 걸었지만 선수생활 막바지에 은퇴를 앞두고 왼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고백해 팬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고인은 청소년 대표와 올림픽 대표, 국가대표 등 태극마크를 달고도 빼어난 활약을 펼쳤다. 국가대표로는 A매치 124경기를 뛰면서 18골을 기록했다.
고인의 A매치(국가대표팀 경기) 기록에는 선수들에게 꿈의 무대라는 월드컵 득점도 2골이나 있다.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1998 프랑스월드컵에선 벨기에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하석주의 프리킥을 동점골로 연결해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지켰고, 한·일월드컵에선 조별리그 첫 상대인 폴란드를 상대로 추가골을 터뜨려 한국 축구 역사상 월드컵 첫 승을 안겼다.
현역에서 은퇴한 뒤에는 대전 시티즌과 울산대, 전남 드래곤즈 등을 거쳐 인천에서 지도자로 활약했다. 고인이 TV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이강인(발렌시아)을 가르친 것도 팬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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