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이 자신을 원망하는 사람들에게 쓴 글 본문
가계 빚 폭증시켜서 집값 띄우면 나중에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탈나기 십상이라고 했다. 지난 정부가 투기를 조장해 집값이 뛰는 것이니 분위기에 휩싸여 무리하게 빚 내서 집 사는 건 삼가라고 말렸다. 나는 집값이 2~3년간 오를 수 있다고 해도 투기판 같은 곳에 들어가 차익 남기고 빠져나오라고 투기를 권하는 사람이 아니다. 대신 소득이 충분한 사람들이 굳이 집을 사는 건 그 사람들이 알아서 판단할 일이니 안 말린다고 했다. 지난 몇 년간 내가 말한 내용의 핵심은 시종일관 이거였다.
이런 내 말을 도대체 어떻게 들은 건지 "선대인이 집값 떨어지니 집 사지 말라"고 했다며, 그 동안 집을 안 사서 손해(?)봤다는 댓글들이 종종 달린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내가 부동산시장이 이렇게 위험하게 치닫는 걸 보면서도 무리하게 빚 내서 집을 사라고 했어야 했나? 나 같은 사람이라도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위험한 시장상황이나 가계부채 폭증의 무서움을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기득권 언론이, 건설업계와 연결돼 있는 부동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해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건설업계와 부동산업계 등에 맞서 늘 1대 99의 싸움을 하는 것처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싸움의 최전선에 서서 경고와 비판의 강도를 높이다 보니 나도 거대한 세력들의 손쉬운 먹이가 되는 우를 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감수할 수 있다. 정작 나를 아프게 하는 건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일반인들이 나를 원망하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는 기간이 길어지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것은 이해한다. 좋다. 나를 두들겨패서라도 속이 시원하다면 얼마든지 맞아줄 용의가 있다. 그리고 그런 분들은 앞으로 이 문제에 관한 한 내 말을 듣지 마라. 나는 정책을 개발, 분석하고 그걸 대중적으로 알리는 사람이지 부동산 투자 자문을 해주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주거문제에 관한 한 절대로 돈 버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다. 이 나라의 부동산문제에 대해 제대로 자각한 2003년 이후 나는 단 한 번도 주거문제를 그런 식으로 접근한 적이 없다. 그러니 집으로 재테크하려는 분들은 앞으로 절대 내 말을 듣지 말기 바란다.
하지만 나의 경고와 비판 자체를 절대 흘려듣지는 말기 바란다. 무모하기 짝이 없었던 "빚 내서 집 사라" 정책은 언제 탈이 나도 탈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문재인정부의 관계자들도 그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으로 안다. 이제 좀 멀쩡한 정부가 들어섰으니, 그 탈이 최소화되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투기로 물든 부동산시장을 바로잡고, 중장기적으로는 서민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주거정책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정부에서는 비판과 경고를 주로 했던 나도 새 정부에는 건설적인 제언과 요구를 하는 모드로 바꾸려 한다. 나를 원망하는 분들도 그럴 힘으로 새 정부에 올바른 주택정책을 요구해 주기 바란다. 나를 원망해봐야 현실은 바뀌지 않지만, 새 정부가 올바른 주택정책을 펼치면 현실은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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