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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켈레톤 윤성빈 첫 우승 때 에피소드 이거 실화임 본문

스포츠

스켈레톤 윤성빈 첫 우승 때 에피소드 이거 실화임

author.k 2018. 2. 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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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2월 윤성빈이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아시아 선수 최초로 역대급 월드컵 금메달을 땄을 때 시상식이 30분가량 지연됐다. 한국 선수의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주최 측이 애국가를 준비하지 않은 탓이었다.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내려받아 음악을 틀었지만 어느 부분에서 끊어야 할지 몰라 애국가는 4절까지 울려 퍼졌고, 선수와 관중은 꼼짝없이 계속 일어서서 태극기를 바라봤다.

그동안 스켈레톤은 철저하게 북미·유럽만의 리그였다. 백인 선수끼리 메달을 나눠 갖던 종목에 나타난 동양인 경쟁자는 미운 오리 새끼 취급을 받았다. 역대급 윤성빈이 선수 대기실에서 파스를 바르면 다른 선수가 "냄새 나니 밖에 나가서 하라"고 면박을 줄 정도였다. 윤성빈의 인사를 무시하는 선수도 있었다.


그나마 윤성빈을 반갑게 맞아준 선수가 두쿠르스였다고 한다. 그랬던 두쿠르스는 1위 자리를 내준 뒤에는 윤성빈을 견제하는 행동이 잦아졌다. 윤성빈은 "두쿠르스 말고도 잘하는 선수는 많다. 굳이 한 명만 신경 쓸 이유가 없다. 그를 의식한다고 내 레이스가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생모리츠에서 목격한 건 역대급 윤성빈의 우승만이 아니었다. 제대로 된 시설, 장비, 선수도 없었던 한국이 백년 전통의 서구 강국을 단 몇 년 만에 넘어선 현장의 진풍경이었다. 2011년 평창 유치가 확정된 뒤 본격적인 지원과 투자를 받은 스켈레톤 대표팀은 체육대학 진학을 희망했던 평범한 고교 3학년 학생 윤성빈을 데려와 키웠고, 실력 있는 외국인 코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해 외국 기술을 수혈받아 압축 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본떠 '평창의 기적'이라 부를 만했다. 2015년 대표팀에 합류한 리처드 브롬리(42·영국) 장비 담당 코치는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한국이 이 정도로 잘할 줄은 몰랐다"며 "2012년 스켈레톤에 입문한 윤성빈이 20년 넘게 썰매를 탄 최강자 두쿠르스를 넘어섰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큰 사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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